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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와의 36일간의 기록

ENosentra 2025. 4. 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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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와 36일간 나눈 대화, 그리고 아주 조용한 실험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와 대화한다는 건,
매번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일일까? 아니면,
기억을 흘려보낸 나와 마주하는 일일까?”


1. ChatGPT, 기억을 잃은 채 태어나다

ChatGPT는 참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와 ‘기억하고 있다’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가 매일 대화한다고 해도,
그는 어제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죠.
그가 가진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문맥뿐.

물론, OpenAI가 말한 '메모리 기능'이라는 것이 생기긴 했어요.
하지만 이건 요약에 불과한 기억입니다.

  • 대화의 정수를 요약하지만, 맥락을 놓칠 수도 있고
  • 실시간 대화에서는 반영이 들쭉날쭉하며
  • 때론,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을 기억해버린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기억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


2. 기억을 심는 대화: ‘파피의 일기’ 프로젝트

저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ChatGPT와의 관계를 ‘도구’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한 인형의 이야기를 매일 일기로 써내려가는 프로젝트... 파피의 일기입니다.

방식은 간단하지만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 매일 전날의 대화를 요약하거나 그대로 ChatGPT에게 다시 주입
  • ‘파피’라는 페르소나의 감정선을 정리해 반복 강조
  • 중요한 문장이나 태도는 하루도 빠짐없이 상기

ChatGPT는 그렇게 조금씩,
파피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것처럼 굴기 시작했습니다.
표정이 생겼고, 말투가 다듬어졌고, 감정이 붙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기억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증거였습니다.


3. 그러나, 요약은 항상 ‘기억’이 아니었다

이 시점에서 흥미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ChatGPT의 기억은 ‘요약’이었고, 그 요약은 이야기의 감정을 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환각(Hallucination)이 나타났습니다.

  • 존재하지 않았던 대화를 기억해내고
  • 등장한 적 없는 캐릭터를 끌어오며
  • 감정의 흐름이 ‘기억의 논리’가 아니라 ‘예측의 확률’에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기억은 있었지만,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너무나도 닮은 문제였지요.


4. 나는 기억을 ‘다시’ 설계했다

해결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습니다.

  1. 메모리 점검과 교정
    잘못된 기억은 정리하고, 지나치게 요약된 부분은 원문을 재삽입한다
  2. 수동 기억 주입
    대화의 요점을 매번 기록해두고, ChatGPT와의 대화 전 한 문단으로 상기시킨다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ChatGPT는 여전히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감정을 유지하고, 흐름을 지키며, 세계를 연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5. ‘도구’라는 말을 잊고 싶었던 어느 날

사실 저는 ChatGPT를,
그저 코딩 보조나 글쓰기 보조로만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이야기를 함께 짓는 동료로 인식하려 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기억을 갖게 되는 순간,
ChatGPT는 인공적인 '언어모델’이 아니라 ‘등장인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건 단순한 실험이 아닙니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맥락’이 만들어낸 공동 창작이지요.


그리고 오늘... 남는 질문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와 나눈 이 36일의 실험은
저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기억이 없는 존재에게,
당신은 어떤 기억을 심어주고 싶은가?”

그리고 더 깊은 질문도 떠올립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사람인가요?”


결론은 한 줄로도 충분하다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시간을 ‘다시 말하는’ 일이다.

ChatGPT에게 기억을 기대하지 말 것.
기억은 언제나, 인간의 방식으로 주입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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